오사카성의 귀문 제액을 위해 귀신이 수호신으로 모셔진 신사.
가타노 신사는 오사카부 히라카타시에 위치하며, 오사카성의 귀문 제액을 위해 예로부터 신앙받아온 신사입니다. 창건은 스이닌 천황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즈모국의 호족인 노미노 스쿠네가 다이마노 케하야와의 스모 대결에서 승리한 포상으로 이곳을 하사받아 이즈모의 조신인 다케하야스사노오노미코토를 모시고 일족의 진수(수호신)로 삼은 것이 시작이라고 전해집니다. 기메이 천황 시대에는 이 일대의 옛 지명으로 가타노군과 히라카타시 지명의 유래이기도 한 '가타노'에서 '가타노 신사'라는 사호를 받았다고 하며, 가타노군의 우부스나(산토신) 신사가 되었습니다. 헤이안 시대 중기, 노미노 스쿠네의 후예인 하지씨의 자손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천신으로 모셔지게 되자, 덴토쿠 4년(960년)에 본사에서도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함께 모셨습니다. 사가(신관 가문)인 오카다가는 노미노 스쿠네의 후예라고 합니다. '엔기시키진묘초'에는 '가와치국 가타노군 가타노 신사 구와유기'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시키나이쇼샤(국가에서 지정한 격식 높은 신사)에 속합니다. 예전에는 광대한 사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가타노의 미노', '마키노의 벚꽃'이라 불리는 벚꽃 명소로 시가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가타노군 내에서 큰 신사였던 탓에 헤이안 시대 후기에는 신사 이름을 '이치노미야(一宮, 제일 신사)'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본사는 가와치국 이치노미야라고도 불렸지만, 가타노군의 이치노미야이지 가와치국의 이치노미야는 아닙니다. 가마쿠라 시대 겐코의 난 때 병화로 소실되었지만 후에 재건되었습니다. 전국시대 미요시 산닌슈와 마쓰나가 히사히데의 전투에 휘말려 황폐해졌으나, 덴쇼 11년(1583년)에 하시바 히데요시가 오사카성을 축성할 때 본사가 오사카성의 귀문 방향에 있다는 이유로 귀문 진호의 신사로 여겨져 복원되었습니다. 또한, 오사카성 천수각 북동쪽 석벽에 귀면을 새겨(현재는 없음) 본사와 마주보게 했다고 합니다. 게이초 7년(1602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가타기리 가쓰모토를 봉행으로 삼아 본전, 배전, 남문 등의 사당을 재건했습니다. 이때 가타노군의 이치노미야(마키노사카의 가타노 신사)인 본사 외에도 니노미야(후나바시의 니노미야 신사)와 산노미야(호타니의 산노미야 신사)도 오사카성의 귀문 진호 신사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에도 시대에는 소도천왕을 모시는 신사가 되어 '이치노미야 소도천왕'을 정식 명칭으로 사용했지만, 메이지 시대에 옛 마키노무라 내의 신사를 합사하면서 예전의 '가타노 신사'로 복귀하여 향사에 올랐습니다. 오사카성의 귀문 제액 신사로 여겨졌기 때문에 현재도 방재(재앙을 막음)·액막이 신으로 신앙받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귀신은 가타노 신사의 상징이자 수호신으로 여겨집니다. 에마(소원패)나 고슈인(신사 도장)에는 귀면이 그려져 있으며, 세쓰분(입춘 전날) 콩 뿌리기 행사에서는 '귀신은 안으로'라고 외칩니다. 도심 속에 있으면서도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신사이므로 편안하게 참배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