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네덜란드의 서로 다른 조선 기술이 공존했던 귀중한 조선소 터.
에비스가하나 조선소 터는 야마구치현 하기시에 있는 조슈 번이 서양식 범선을 건조한 조선소 터로, 세계유산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제철·제강, 조선, 석탄 산업'의 구성 자산 중 하나입니다. 1853년, 미국, 영국, 러시아 제국 등 서구 열강의 군함이 잇따라 일본 근해에 출몰하여 에도 막부와 여러 번에 위협을 가하자, 막부는 대형 선박 건조 금지령을 철회했습니다. 우라가 경비에 나섰던 조슈 번에게도 대형 선박 건조가 요청되었습니다. 조슈 번은 재정상의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가쓰라 고고로가 군함 건조 의견을 번에 제출한 것 등으로 인해, 다음 해인 1854년에는 번주 모리 다카치카가 서양식 군함을 건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서양식 범선인 기미사와형(스쿠너) 군함을 건조하고 있던 이즈국 도다무라에 선박 목수 두목 오자키 고에몬을 파견하여, 오자키는 도다무라에서 스쿠너선 건조에 참여했던 다카사키 덴조 등을 초청하여 번으로 돌아와, 다음 해인 1856년, 오바타우라의 에비스가하나에 군함 제조소를 개설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하기 번 최초의 서양식 군함인 헤이신마루가, 1860년에는 나가사키 해군전습소에서 네덜란드의 코틀선 건조 기술을 배운 후지이 가쓰노신에 의해 두 번째 고신마루가 건조되었습니다. 헤이신마루 건조에 사용된 철은 오이타야마 제철소 유적(함께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구성)에서 전통적인 제철법인 타타라 제철에 의해 만들어져, 서양식 기술과 일본 전통 기술이 결합된 드문 사례입니다. 그 후, 증기선이 주류가 되자 조슈 번은 외국산 증기선을 구매하는 방침으로 변경하고, 함선 건조는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 폐쇄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에비스가하나 조선소 터에는 당시의 석조 방파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 방파제는 당시 사료에 나오는 '이마우라 나미토'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에비스가하나 조선소 터는 러시아와 네덜란드의 서로 다른 조선 기술이 공존했던 귀중한 조선소 터이며, 근대 기술 도입기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산입니다. 현재는 건물 등은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견학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