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소란에서 벗어나, 정적의 세계로. 연예인들도 많이 찾는 파워 스폿으로 알려진 도요카와이나리 도쿄 별원은, 악연을 끊고 사업 번창의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도요카와이나리 도쿄 별원은, 도쿄도 미나토구 모토아카사카에 있는 조동종 사원입니다. 아이치현 도요카와시의 도요카와이나리 묘겐지의 유일한 직할 별원(월경지 경내)이며, 에도시대, 오오오카 에치젠노카미 타다스케가 도요카와이나리에서 다키니텐을 권청하여 저택 이나리로 모신 것이 시작입니다. 오오오카 가문은 미카와 시대부터 도요카와이나리를 신앙했다고 하며, 에치젠노카미 때, 에도의 아래 저택에 다키니텐을 권청하여 모셨다고 합니다. 그 후, 오오오카 가문의 아래 저택이 아카사카 히토츠키로 이전되면서, 도요카와이나리도 계속해서 이전된 저택에서 모셔졌습니다. 에도에서는 이나리 신앙이 성행했기 때문에, 오오오카 저택에서는 매달 '오의 날'과 22일에는 문을 열어 일반 서민의 이나리 참배를 허용했다고 합니다. 그 후, 분세이 11년(1828년), 신도들의 요청에 따라 묘겐지가 히토츠키의 오오오카 저택 부지 중 4분의 1(약 250평)을 빌려, 도요카와이나리의 에도 참배소를 건립한 것이 도쿄 별원의 창건으로 여겨집니다. 에도 참배소가 마련됨으로써, 일반 신도들도 매일 참배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의 오오오카 저택의 저택 이나리는 '오쿠노인'이 되었습니다. 메이지 9년(1876년), 도쿄부는 사유지에서 모셔지는 사당에 대한 무허가 일반 참배를 금지하는 포고를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도쿄 참배소도 일반 참배가 불가능하게 되었고, 오오오카 저택의 다키니텐의 분령은 도요카와의 묘겐지 본원으로 환원되었습니다. 2년 후, 부로부터 허가가 내려져 일반 참배가 재개되었습니다. 메이지 20년(1887년), 오오오카 저택의 한쪽 구석이 비좁아졌고, 당우의 신축 및 증축도 어려워진 것 등으로 인해, 현재지(모토아카사카 1초메)로 이전했습니다. 오오오카 에치젠노카미는 에도 남마치 봉행으로서의 활약과 하타모토에서 다이묘로 발탁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 덕분에 에도의 도요카와이나리도 입신출세와 도난 방지, 분실물·실종자 등의 효험으로 평판이 높았습니다. 센류에도 '이시카와는 훔치고 도요카와는 훔치게 하지 않는다'라고 읊어졌다고 합니다. 또한 메이지 시대 이후의 아카사카는 요정이나 게이샤 등이 모이는 화류계가 발전하면서, 예도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신앙도 늘어났습니다. 현재도 쟈니스 사무소 소속 탤런트를 비롯하여, 저명한 연예인, 스포츠 관계자들로부터 신앙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2월의 '세츠분에'에는 각계 유명인도 다수 참가한다고 합니다. 도시 한쪽에 있으면서도, 한 발짝 들어서면 도시의 소란과는 격절된 세계가 열리는, 그런 정적의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