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치 씨가 세운 저택 터. 성이 아닌 저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방어력은 높지 않습니다.
오우치 씨 저택 터는 야마구치현 야마구치시 오도노오지에 있던 성관으로, 스오국과 나가토국을 본거지로 했던 오우치 씨의 거관(수호관)입니다. 정확한 건축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에도시대에 그려진 '야마구치 고지도'에 따르면 14세기 중반인 1360년경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발굴 조사에 따르면 1400년대 중반 제13대 오우치 노리히로의 건축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우치 씨 24대 당주인 오우치 히로요가 야마구치를 본거지로 정하고 이주했을 때 지어진 저택으로, 교토를 모방한 야마구치 거리에 어울리게 성이 아닌 저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후방에 다카네 성이 있습니다. 최전성기의 저택은 해자를 포함하면 동서 160m, 남북 170m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는 방형 저택으로, 교토의 장군 저택을 모방했다고도 합니다. 초기에는 저택이 도랑과 담으로 둘러싸인 정도였지만, 15세기 중반에는 해자와 토루로 어느 정도의 방어력을 갖춘 성관이 되었습니다. 해자는 남쪽으로 더 뻗어 있는 것으로 보아 토루로 둘러싸인 부분보다 더 남쪽에도 관련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택 바로 북쪽에는 별저로 축야마 저택(축야마 별궁)이 지어져 있었고, 오우치 씨 저택은 주거용으로, 축야마 저택은 영빈관적인 역할의 장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저택의 남동부에는 큰 연못이 있는 정원이 있고, 북서부에는 고산수 정원, 현재의 류후쿠지 남동쪽에도 상세 불명의 정원이 존재했습니다. 오우치 씨의 번영과 함께 '서쪽의 교토' 야마구치로 번성했지만, 히로요의 아들인 오우치 요시히로 무렵에는 이미 비좁아진 듯하여 바로 북쪽에 축야마 저택을 지었습니다. 오우치 씨 저택도 그 영토 확장에 따라 최소 5회의 증축을 반복했다는 사실이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오우치 요시타카 시대인 덴분 20년(1551년) 가신인 스에 다카후사의 모반으로 야마구치는 잿더미가 되었습니다(다이네이지 변). 이 당시 오우치 씨 저택의 상황은 불분명하지만, 변 이후에는 새로운 오우치 씨 당주가 된 오우치 요시나가 오우치 씨 저택에 들어갔습니다. 고지 2년(1556년) 모리 모토나리가 침공(보초경략)해 오자, 오우치 요시나가는 야마구치를 포기하고 도망쳤습니다. 오우치 씨 저택도 그 역할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같은 장소에 모리 다카모토가 오우치 요시타카의 명복을 빌기 위해 류후쿠지를 건립했습니다. 쇼와 34년(1959년) 11월에는 국가 지정 사적이 되었고, 발굴 조사와 복원 정비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헤이세이 29년(2017년) 4월 6일, 다카네 성과 함께 속 일본 100대 명성(174번)으로 선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