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동양 제일이라고 불렸던 미코하타 선광장 터는 그 규모의 크기와 역사를 느끼게 하는 박력 있는 산업 유산. 거대한 기초 구조물과 인클라인의 흔적, 묘진 전차 등을 견학하며 일본 근대화를 지탱했던 역사를 되새겨 보자.
미코하타 선광장 터는 효고현 아사고시 사노에 있는, 과거 아케노베 광산의 선광 시설로 건설된 선광장 터입니다. 전국 시대 무렵부터 채굴이 시작된 아케노베 광산은 금, 은, 구리, 납, 주석 등을 산출하는 다품종 비철금속 광산이었습니다. 미코하타 선광장 터도 한때는 미코하타 광산으로 번영했습니다. 은과 구리를 산출하는 광산으로, 한때는 이쿠노의 지산으로 막부의 관리하에 놓였지만, 이쿠노 은광보다 광석 산출량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번영과 쇠퇴를 반복했습니다. 메이지 11년에는 미코하타 주변에서 유망한 은 광맥이 발견되면서 근대 광산 개발이 진행되었고, 메이지 정부도 힘을 쏟아 당시 이쿠노에 있던 외국인 거주 일부와 광산 사무소를 두었습니다. 그 광산 사무소는 현재도 '무세 구거주지'로서 미코하타 선광장 등의 자료 전시를 하거나 사진을 장식하는 무세 하우스 사진관으로 보존 활용되고 있으며, 효고현 지정 문화재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메이지 41년이 되자 미코하타는 쇠퇴하여 탐광 채광장의 축소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메이지 29년에는 미쓰비시로 불하되었고, 다이쇼 6년에는 드디어 폐광됩니다. 그 무렵, 아케노베 광산에서는 채굴 광량 증가로 기존의 선광 시설로는 비좁아졌기 때문에, 채광 후의 1차 파쇄까지 실시하고 미코하타에 선광 기능을 이전하는 계획이 생겨났습니다. 광산으로서의 역할은 끝났지만, 미코하타는 다이쇼 8년, 아케노베 광산에서 옮겨온 광석을 선광하는 대규모 '기계 선광장'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산의 경사면을 이용한 기계 선광장은 그 규모와 산출량 모두 '동양 제일'이라고 불렸습니다. 특히 '비중 선광 기술'은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해외에서도 시찰단이 방문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24시간 가동했으며, 밤이 되면 선광장이 빛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불야성과 같았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쇼와 62년, 엔화 강세의 급격한 진행으로 경쟁력을 잃은 아케노베 광산의 폐광과 함께 미코하타 선광장도 조업을 종료하고 폐쇄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건물은 남아 있었지만, 헤이세이 16년에는 해체되었습니다. 현재는 철근 콘크리트의 기초 구조물과 선광장의 상하를 연결했던 인클라인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현재는 사적 공원 '광석의 길 미코하타 스테이션'으로 정비되어 있습니다. 또한, 아케노베에서 미코하타까지 연결했던 '묘진 전차'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시대와 함께 모습을 바꾸며 일본 경제를 지탱해 온 미코하타. 현재도 남아 있는 선광장 터의 박력은 그 깊은 역사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그야말로 '동양 제일'을 실감할 수 있는 산업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