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성의 명장・도도 다카토라가 개수한 역사적인 성터. 현재는 녹음이 풍부한 성 공원으로 정비되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쓰성은 미에현 쓰시에 있던 일본의 성으로, 별명 아노쓰성이라고 불립니다. 현재 쓰시의 옛 명칭은 아노쓰이며, 헤이안 시대부터 이세국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후지와라 남가의 흐름인 구도 씨를 조상으로 하는 나가노 씨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쓰성의 기원은 전국시대 에이로쿠 연간(1558년 - 1569년)에 나가노 씨의 일족인 호소노 후지미쓰가 아노・이와타 두 강 삼각주에 소규모 아노쓰성을 지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에이로쿠 11년(1568년) 오다 노부나가의 이세 침공으로 오다 소부노카미(쓰다 가즈야스)가 입성. 다음 해에는 오다 노부카네가 입성했습니다. 노부카네는 성곽을 확충하고, 석벽을 쌓고 해자를 둘러서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를 정비했습니다. 덴쇼 5년(1577년)에는 5중 천수각과 소천수각을 완공했습니다. 도요토미 시대가 되자 분로쿠 3년(1594년) 노부카네는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단바국 가시와라로 옮겨지고, 다음 해 분로쿠 4년(1595년) 7월, 도요토미 가신인 도미타 가즈시로가 5만 석(6만 석이라고도 함)을 받아 입성했습니다. 가즈시로의 아들 노부타카는 게이초 5년(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에 가담하여 서군 측 모리 히데모토・초소카베 모리치카 군 3만 병력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노부타카와 원군으로 온 와케베 미쓰요시 연합군은 1,300명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성 내 건물의 대부분을 소실했습니다. 분전 끝에 모쿠지키 오기의 중재로 개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분전으로 인해 전후 에도 막부로부터 2만 석의 가증을 받았습니다(아노쓰성 전투). 게이초 13년(1608년) 노부타카는 이요 우와지마 번으로 이봉되고, 대신 이요 이마바리 번에서 도도 다카토라가 이세・이가 22만 석을 받아 입성했습니다. 다카토라는 성을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윤곽식 성곽으로 변모시키고, 성 아래 마을을 정비했습니다. 이후 메이지 유신까지 도도 씨의 거성이 되었습니다. 메이지 4년(1871년) 폐번치현으로 폐성되어 이후 건조물은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성 공원」으로 혼마루 터에 일본 정원이 정비되었고, 쇼와 33년(1958년) 우시토라 망루 터에 인접한 다몬 망루 터에 콘크리트 제 모의 구석 망루(3중 망루)가 복원되었습니다. 예전 우시토라 망루와는 장소도 형태도 전혀 다르며, 사료를 무시한 관광용 모의 망루입니다. 현재 혼마루 터의 일본 정원 입구에는 번교 유조관의 정문인 니토쿠몬이 이전되어 현존하고 있습니다. 헤이세이 29년(2017년) 4월 6일, 속일본 100명성(152번)에 선정되었습니다. 쓰성터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자연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하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