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하치만 신사로 알려져 있으며, 국보와 중요문화재 등 수많은 귀중한 문화재를 소장한 역사 깊은 신사입니다.
호마다 하치만구는 오사카부 하비키노시 호마다에 있으며, 오진 천황릉의 남쪽에 인접하여 자리 잡은 신사입니다. 신사에 따르면, 긴메이 천황 20년(559년)에 미마나 부흥을 목표로 한 긴메이 천황에 의해 오진 천황릉 앞에 신묘가 설치된 것을 창건으로 여기고 있으며, 가장 오래된 하치만 신사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이 땅은 오진 천황이 어렸을 때 거주했던 곳이기도 하며, 황후인 나카츠히메는 이 땅을 다스리는 호마다 마와카오의 딸이기도 하여, 오진 천황에게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입니다. 나라 시대에는 교키에 의해 신궁사인 나가노산 고코쿠지가 경내에 창건되었습니다. 헤이안 시대의 에이쇼 6년(1051년)에는 창건지에서 남쪽으로 1초 정도 떨어진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고레이제이 천황의 행차가 있었습니다. 하치만 신이 미나모토 씨의 씨신으로 여겨지면서, 겐큐 7년(1196년)에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 의해 사전이 수리되고 국보인 가마 등이 기증되었습니다. 무로마치 막부 제6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노리는 중요문화재인 '호마다 종묘 연기'와 '진구 황후 연기'를 봉납했습니다. 이처럼 당사는 미나모토 성을 사용하는 역대 쇼군을 비롯하여 무가의 신앙을 받으며 번성했습니다. 남북조 시대부터 전국 시대에 걸쳐 별당직인 호마다 미카와 뉴도 일족에 의해 보호되었지만, 교토쿠 3년(1454년)부터 시작된 가와치 수호 하타케야마 씨의 내분으로 인해 사전과 가람이 소실되어 황폐해졌습니다. 미요시 씨에 의해 멸망당한 오진 천황 후손인 호마다 씨의 일부는 시코쿠와 규슈로 도망쳤으며, 에도 시대에는 간사이 일대의 야시(노점상)의 원조로 군림했다고 합니다. 가와치 국을 지배하에 둔 오다 노부나가는 사령을 모두 몰수했습니다.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사령 200석이 기증되어 사전이 재건되었지만, 덴쇼 14년(1586년)에 소실되었습니다. 후에 사령 200석은 가와치 국 시키 군 후루무로무라로 전환되었습니다. 게이초 11년(1606년)에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가타기리 가쓰모토를 부신 봉행으로 임명하여 본전, 중문, 배전 등의 재건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배전 마감 중에 오사카 전투 및 도요토미 씨의 멸망이 있었고, 건물의 내부가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습니다. 에도 막부도 200석의 사령을 안도하고, 수차례에 걸쳐 사전을 수리했습니다. 신궁사인 나가노산 고코쿠지는 탑두 15방을 자랑했지만(호마다 하치만구는 사원 13가), 메이지 초년의 신불 분리, 폐불훼석으로 인해 본당 등의 건물이 철거되고 남대문만이 남았습니다. 또한, 부사에 편입되었습니다. 메이지 시대에는 막말의 검객으로 알려진 모모이 나오마사가 궁사를 지냈습니다. 호마다 하치만구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이 조화를 이룬,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신사입니다. 꼭 한번 방문하여 그 매력을 체험해 보십시오.